[Art]미술관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이유

에디터 고석희
2019-07-10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술관이 인류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까? 당연하다. 과학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작품이 전시된 금고 같은 곳이니. 하지만 건물 자체로 문화유산이 되기란 좀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7월 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뉴욕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인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하고 건축한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에서 출발한다. 마찬가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빌라 사보아를 건축한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20세기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손꼽히는 인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최근 구겐하임 미술관뿐만 아니라 그외 라이트의 건축물 7곳을 한꺼번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숲속의 폭포를 저택으로 끌어들인 기념비적인 ‘낙수장’을 포함해 프레데릭 C 로비하우스, 홀리혹 하우스, 제이콥스하우스, 탤리에신, 탤리에신 웨스트, 유니티 교회 등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사진=위키피디아]

라이트가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에 착수한 건 1943년이다. 당시 70대의 고령에 접어든 그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창립자이자 미국 철강 재벌이었던 솔로몬 R 구겐하임(1861~1949)의 현대 미술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한 미술관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후 90세로 눈을 감기 전까지 16년 동안 라이트는 구겐하임 미술관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미술관이 완공된 건 공교롭게도 그가 세상을 떠난 1959년. 만년의 건축가가 혼신을 쏟아부으며 완성한 역작이었다.

라이트는 생전 뉴욕이란 도시를 그닥 선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시 면적에 비해 인구가 지나치게 많고, 도심에 들어찬 빼곡한 마천루를 갑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구겐하임을 건축하면서 그는 건축물이 자연과 주위 환경에 녹아들 수 있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의 철학에 충실했다. 둥근 나선형 형태의 공간을 통해 주변의 빌딩숲과 대조적인 활력을 부여하면서, 인근 센트럴 파크의 조경과도 자연스레 어울리도록 설계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 역시 인류의 건축 역사에서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에서 보듯, 구겐하임 미술관은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나선형으로 넓어지는 깔때기 형태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대한 달팽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장과 맞닿은 최상층으로 곧장 올라간다. 바로 그곳에서 전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경사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면서 나선형 복도에 걸린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과 동시에 마치 거대한 조각 같은 미술관 구조를 직접 체험하는 셈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내부 사진. 나선형 복도를 따라 내려오며 전시를 관람하는 구조다. [사진=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다만 이 공간이 ‘전시에 적합한가’라는 의문에는 그간 꾸준히 논란이 있었다. 건물 전체가 나선형으로 지어진 만큼 벽면이 완전히 평평하진 않기에, 여전히 예술가와 평론가 사이에선 종종 의견이 엇갈린다고.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라이트가 창조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현대 건축, 미술사 이전에 없던 어떤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구겐하임 박물관을 위시한 라이트의 건축물을 등재하는 이유로 "각각의 건물이 주거와 예배, 일, 여가와 관련해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공했기 때문”이라 밝혔다. 그건 아마도 미술관을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 아닌,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의 일상을 하나의 예술로 확장하는 장소로 해석했던 라이트의 사려깊은 비전에 빚졌기 때문일 것이다. 



에디터 고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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